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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탄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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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ㅎ
by 뮤탄트 at 07/29 pillory 님 집에 들렀다가.. by Jeff at 07/29 진심입니다. by 뮤탄트 at 07/15 그럼 반성하고 싶을 때마.. by 뮤탄트 at 07/15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점.. by sesism at 07/15 그건 정말 저랑 비슷;;;.. by 뮤탄트 at 07/14 촛불집회 이후에 직장 .. by 뮤탄트 at 07/12 조선일보를 욕하지만 정.. by 쟁가 at 07/10 부러워 하면 지는 겁니다.. by 뮤탄트 at 06/26 쳇, 나도 장가를 가야.. by 쟁가 at 06/26 최근 등록된 트랙백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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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리즘과 시민의식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할 수 없는 형제와 같다. 때문에 저널리즘의 다양성, 공공성의 문제는 시민의식을 반영하고 또는 견인한다. 이럴 때 나는 머 원더버드 버전의 '옛날 사람'인지라 김현 버전의 '길항'한다는 표현을 적당하다고 믿는다.
* 저널리즘은 체제내적이고 시민상식적,이라는 뜻에서 현실 추수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나는 대개 시민사회에서 사용되는 현실주의적 판단은 저널리즘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유통된다고 믿으며, 그런 점에서 '현실주의'가 실제 시민사회의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저널리즘의 저 두 가지 속성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 최장집 선생의 경향신문 기고문을 보니, 그에게 현실주의란 개념적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되는 듯하다. 이게 뭥미!?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는 말부터 일단 해야겠다. 나는 최장집이나, 우석훈, 진중권 같은 이들을 공적 지식인으로 부르고 싶은데,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그들은 시민적 상식의 데드라인을 확인해주고 그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지식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이와 같은 지적인 '공공성'과 상관없는 지점에서 발언하고 말하고 싶다면, 저널리즘이 아닌 그냥 강단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정치학자인 최장집 선생이 유독 '직접 민주주의'와 거리의 정치를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이라는 다분히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행위에 대해서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어떤 학문보다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구현되는 관념의 '현실'과 지식사회학에 민감해야 할 정치학자가 거꾸로 가장 첨예한 정치 현실을 '관념'으로 한정지으려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발언은 의회 정치가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면에서 더 '현실적'이라는 가치판단을 은폐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예컨대, 최장집의 '그래도 정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발언은, 내수경제의 파탄으로 만신창이가 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활성화나 노동 구조 개선보다 더 거대한 재벌과 더 치열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FTA의 슬로건이 더 '현실적'이라는 말과 비슷한 논리 구조를 가진다. * 의회가 의회를 성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왼손이 왼손을 긁을 수 있다는 말처럼 개소리다. 그건 이미 자기 구원의 문제처럼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이다. * 내용이 사라진, 대표성을 잃어버린 대의제 민주주의는 아주 대단히, 위험하다. 더 이상 내용이 형식을, 형식이 내용을 서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은 상호 충돌한다. 말하자면, 절차적으로 존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괴멸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관성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다만 실질적 민주주의가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 절차를 완전히 정지시키고, 새롭게 적절한 형식-합의를 거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 정지-죽음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했지, 거리의 정치가 의회로 수렴된다고는 생각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저 촛불을 훼손하지 않고 가장 온전히 그 결과물을 전하려면 파업 밖에 없다고 믿는다. 또 그래서 저 촛불이 총파업과 어떻게 화학반응할지가, 매우매우 걱정되고 또 중요하다고 본다. 낭만적인가? * 술떡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두 권으로 된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책상에 올라와 있다. 아조 아껴가면서 읽을 예정이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다 말고 아무데나 펼쳐서 잠깐 읽었는데, 온통 마음에 들고 아주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거창하게 내가 인문학을 공부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과장이지만, 아무튼 인문학 서적을 읽는 동안은 나는 다른 아무것도 안하게 된다. 소설도, 시집도 안읽고 사람도 영, 잘 안만나고 연애도 안하고, 그런 패턴이 반복된다. 인문학은 아무한테도 곁을 주지 않는다. 배타적인 생활을 불러온다. 왜 그런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걍 나의 습관일런지도....
* 28일날은 나의 아버지의 여동생의 아들의 결혼식이 있다. 그에게는 정말 축복이 필요하다. 가서 완전 축하해주리라. 그리고 광화문에도 가봐야지. 누구든 광장에 모인 우리들을 완전 축복해주었으면 좋겠다. 기름을 부어다오. * 어제는 마구마구 졸린 눈을 비비며 퇴근길을 서둘러 집으로 오는데, 집으로 가는 길 초입에서 우연히 아내랑 만났다. 아내는 가끔 같이 일도 하고 그러던 후배가 제주도로 내려간다고 해서 근처에서 차를 마셨다고 한다. 김밥을 사들고, 엠피삼 플레이어 볼륨을 최대로 높여서 졸음을 쫓아내며,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멀리서 아내의 실루엣이 조금씩 확연해질 때, 나는 그럴 때 정말 기쁘고 즐겁고 그렇다. 오늘은 기쁜 일만 생각하자.
*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을 한 달음에 읽었다. 나는 마야코프스키를 너무나 좋아한다. 나는 그 과잉을, 과장을 몹시도 사랑한다. 정치적 상상력이 시의 육체를 어떻게 뒤흔들고 근육을 만들어내는지를 그가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주 매혹적인 문장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이 책은 마야코프스키보다는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미래파'의 운동을 다루는 데 많은 부분이 할애된 책인지라, 미래파들이 저지른 여러가지 오류들과 명백한 잘못들을 진술하고 있기도 하다. 파시즘과의 연관성 문제는 좀 더 여러가지 책들을 뒤져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재독하는 중이었다. 흠.....
* 책 중간에 마리네티가 차량 전복 사고를 겪은 직후 '각성'에 도달했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각성'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맨 처음 충돌 사고를 낸 뒤 아주 막, 신났더랬다. 흠.... * 도저히 들뢰즈를 곧바로 들이박을 자신은 영 없어서 친구에게 물어물어 브라이언 마수미의 '천개의 고원 사용자 가이드'를 샀다. 왠만하면 들뢰즈, 씩이나 안읽고 살 수 있었으면 했는데, 이택광의 저 책 말미를 들여다보니 안읽고는 안되겠다, 싶다. 흠..... *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신난다! 파업이다! 라고, 나는 자동으로 생각하게 된다. 일 더하기 일은 이. 일 더하기 이는 삼. 파업은 신나는 것. 언젠가 차를 몰다가 무려 교육문화예술회관 현판을 들이받고 나서 '이거 신난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나의 원체험 때문이지, 싶다.
머냐면, 갑자기 어떤 개새끼에 병신인데다, 교수에다 리얼리스트인 누군가의 얼굴이 생각난다. 때려주고 싶다. 몹시. * 이건 다 우연한 일들이다. 우연한 일들의 연쇄, 그러니까 모든 일의 전진은 우연으로 촉발되는 것이고, 나는 그게 아주, 마음에 든다. 어쩌면 그것들이 다 우연이라서 나는 나로 남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훼손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나의 그런 믿음들이 내가 나의 실존에 응석을 부릴 수 있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은 모든 사건의 부드러운 뇌관이므로, 우연이 없다면 어떤 사건도 폭발하지 않는다. 물론, 우연이 뇌관이라고 해서 그것이 사건의 의미를 훼손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 그 모든 폭발성을 지닌 사건들이 우연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의 필연과 인과를 증명하는 일이기 전에 우연에 몸을 던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이 원하는 안정과 시민적 양심과 체제와 필연,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은 단지 눈 앞에 명백한 우연에 몸을 던지지 못하는 비겁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비겁함 때문에 그 인과와 논리들이 대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10일날 광화문에서 약속을 잡고 두산-롯데전 경기 시작을 사무실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빅 매치가 겨우 내야 지정석을 채울 정도만 빼고 텅텅 비었다. 그리고 정말 오랫만에 거리에서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힘센 금속노조의 깃발, 즐거운 아고라의 깃발, 학생들의 깃발, 연인들의, 아이들의, 샐러리맨들의 촛불, 결연한, 우왕좌왕한, 술취한, 절망하거나 분노한, 즐거운 목소리들. 나는 시위대가 가득 들어찬 거리를 빠져 나와 후미로 합류하는 사람들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 힘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한 소리지만,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막 잠이 오더라. 볕좋은 마루에 나와 앉은 것처럼 그랬다. 나른한 피로가 마구 몰려왔다.
오늘 우리가 당장 패배할지라도 그 절망이 온전히 우리들의 것이 되었으면 하는, 이 기쁨도 이 절망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남았으면 하는, 앞으로 다시는 남의 절망을 대신 살지도, 남의 희망을 대신 꿈꾸지도 않았으면 하는. * 폭력은 정치적 상상력의 적일까. 정치적 감수성의 적일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 그 두가지가 병존할 수는 없을까. 젠장, 미안하지만 밑바닥부터 쌓여있던 증오가 마구 마구.......증오는 말로 표현되지 되지 않는다. 으으으으.....가오나시가 된다는....
* 나는 좀처럼 성숙하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감정을 자제하는 건 이런저런 출근해서 이런저런 일을 할 때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사실 그 시간마져도 들쑥날쑥 제멋대로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십대 때는 스무살이 되면, 스무살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이 날뛰는 마음의 향방을 조금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다른 그 어떤 것보다 나는 나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이 상태로는 좋은 사람이 되기는 영 글러먹은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니....거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