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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tcoo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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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용맹정진</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4 Aug 2008 08:16:5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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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tcoo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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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용맹정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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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리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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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피터 버거, 천사들에 관한 소문, 문득, 집어 들고 읽다. 아이들이 한밤중에 일어나 공포와 혼돈에 맞닥뜨렸을 때 그 부모가 아이들을 다독이는 것, 신뢰, 질서에 대한 초월적 신호들의 일상적 실재.....리듬은 현실적 시간, 말하자면 죽음으로 수렴되는, 현실의 시간들에 대한 대안이다. 희망. 놀이의 리듬, 시의 리듬은 그래서 죽음에 반항한다. 새로운 실재, 새로운 세계를&nbsp;창조해낸다. 리듬의 힘이다. 시간의 뒤틀림. 죽음 앞에 성숙한 태도는 리듬을 버리는 일이다.&nbsp;죽음 앞에 성숙할 것이냐, 아니면 반항할 것이냐. 			 ]]> 
		</description>
		<category>문자 중독</category>
		<pubDate>Mon, 04 Aug 2008 08:16:52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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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마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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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나의 문장은 경기와 연동하므로, 인과관계가 당분간 마비되겠다. 내 인생에는 개가 두 마리,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두 마리 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가 열네살쯤 죽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나는 아무런 동물도 안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쓰레기통에서 어리고 철없는 연인이 구한 작은 도둑고양이, 예방주사 맞히고 놓아 길렀는데, 내가 집을 비운 어느날 굶주림을 참지 못해 쥐를 잡아먹다가 질식사했다. 참새를 잡아다가 나한테 보여주는 게 어린 녀석의 취미였다. 나한테는 창고 같은 방에 구식 컴퓨털랑, 씨디 플레이어가 장착된 오디오랑 책더미와 담요가 있었다. <br>&nbsp;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너무너무나 커다란 타워 크레인이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지상의 자욱한 집들을 다 쓸어버리고, 이해받을 수 없는 *** 때문에 혼자 서 있었다. 살을 다 발라낸 괴수의 척추. 사무실을 나오면 거리의 불빛과 싸이렌과 엔진음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니 오히려 상쾌하다. 명쾌하다. 파이프, 고압선, 비보호좌회전, 추돌사고, 트레일러, 난투극 그 모든 것들이 다 내 팔다리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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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life goes on</category>
		<pubDate>Tue, 29 Jul 2008 14:42:30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there will be blood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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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고진하 시인의 시 중에 '에이허브'라는 시가 있다. 모비딕에 나오는 에이허브를 시에 옮겨온 것인데, 시집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문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날카로운 작살로도&nbsp;겨눌 수 없는(?) 신이라면 무릎꿇지 않겠다' 던가, 대충 시 전문이 그랬던 것 같다. <br><br>* there will be blood 를 보고 한참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영화가 다시 생각났다. 그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 내가 느낀 딜레마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는데, 도무지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이 안났더랬다.<br><br>*&nbsp;비극적인 영웅은 '악'이 외면화되는 순간 '죄인'이 된다.&nbsp;아니, 더 정확하게는 위대한 우연이 치졸한 인과관계로 돌변하면서 범주가 전환된다. 비극에는 선악의 이분법이 없다. 모비딕의 에이허브가 그렇다.&nbsp;서사시라는 양식이 그렇다. 비극에 있어서는 오직&nbsp;고귀한 자와 천박한 자의 구분이 있을 뿐, 선악의 구분으로 전환되는 순간 비극의 위계는 뒤죽박죽된다. 블러드에 나오는 석유'광' 플레인뷰는 비극 안에서 살아 있다. <br>&nbsp; 그 고통, 그 욕망, 그 광기는 인간을 넘어선다. 인간적이라는 형용사의 최대치 또 그 한계치를 시험한다.&nbsp;그가 서 있는 곳이 인간의 최전방이다. 그곳이 인간의 가장 전위다. 김기덕의 '해안선'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선악을 들이댈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그에게 선악을 들이댈 수가 없다. 링이라는 전위, 그 최전방에 몸을 던지는 성난 황소의 주인공에게 선악을 들이댈 수가 없는 것과 같다.&nbsp;그러나&nbsp;셰익스피어의 비극과 달리 저 영화들의 주인공은&nbsp;비극을 살면서 선악의 이분법을 사는 존재다. 그의 고통은 그가 비극적이라서가 아니라 비극을 온전히 살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nbsp;그들의 고통은&nbsp;그 두 범주의 중첩을 살 수 밖에 없기&nbsp;때문에 존재하는 고통이다.<br>&nbsp; 비극에서&nbsp;선악의 폭력적 이분법 아래로 낙하한 주인공들이 인간적 위엄을 견지하고자 하면 할수록 그들은 기꺼이 악을 감당하는 존재가 된다. 플레인뷰는 목사를 살해함으로써&nbsp;인간적 존엄에 대해 묻는다.&nbsp;용서를 구하지 않고,&nbsp;외면화되었던, 타자화되어 있던 악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악인이다. 아니, 악인 이상이다. 그것을 인간 이상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description>
		<category>귀는 맑고, 눈은 어두워</category>
		<pubDate>Sat, 19 Jul 2008 20:35:44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good night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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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잘 시간이 되었으니 자자. 굿 나잇.<br>발바닥이 다 식었다.			 ]]> 
		</description>
		<category>life goes on</category>
		<pubDate>Wed, 16 Jul 2008 16:59:20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만하임을 통해본 어장 관리의 윤리학 ]]> </title>
		<link>http://notcool.egloos.com/449052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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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만하임을 읽다보니 만하임을 얼렁 읽어치워야 더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일념으로 독서를 하게 된다. 만하임 중간중간에 쓸데 없이 이런 저런 책들을 들여다본 시간이 더 많았겠지, 싶다. 만하임이 지지부진, 지겹기도 해서 막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싶다는 충동마저 생길 정도다. 오늘의 지하철에서 만하임과&nbsp;엉뚱한 생각으로 만나서&nbsp;혼자 큭큭 미친놈처럼 웃었더니, 사람들이 무슨 책인가&nbsp;고개를 빼고&nbsp;들여다보기도 했다. <br>&nbsp; 오늘의 만하임은 역시나 어제처럼 자분자분하고 골똘, 근엄했는데 내용 중에 운명, 정의, 책임 윤리 라는 대목에서 나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해버렸다. 수업시간에 딴 생각하는 놈이나 매한가지.&nbsp;만하임 왈, 윤리를 구분하면&nbsp;결과에 대해 하늘의 순리에 맞기는 '운명' 윤리가 있는가 하면, 결과와 상관없이&nbsp;인간의&nbsp;의도와 의지에&nbsp;집중하는 '정의' 윤리가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결과까지 미리 미리 예측하고 그것을 감당하고자 하는 '책임' 윤리가 있다는 것이다.&nbsp;여기서 문득 흔히 어장 관리라&nbsp;부르는 관계 맺음 방식이 윤리적으로 어떤 헛점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한 생각이 났다. 물론 만하임이 윤리라고 통칭한 저 용어는 다분히 사회적 의미에서 발언된 것이라 내 질문에 적합한 용어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은 빼자. 덥다 더워. 만하임은 여름에 적합한 독서는 아닌 것이다.<br><br>* 어장관리는 가는 사람 안잡고, 오는 사람 안막는다, 는 거친 슬로건으로 포장돼 있지만, 들여다보면 대단히 섬세한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된 관계 맺음 방식이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nbsp;이 사람 저 사람의 감정을 이용해 이를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이용하는&nbsp;여성 혹은 남성을 보통 어장관리자라 지칭하는데, 대부분 여성이 어장관리자를, 남성이 피관리자 역할을 맡는 경우가 주로 이야기된다.&nbsp;<br>&nbsp; 흔히 어장 관리라는 부정적인 용어를 대부분 여성들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사례와 빈도와 상관없이 일단 여성들을 비판하는 데 이 용어가 사용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권력 관계에서 남-여 사이의 여전한 불평등을&nbsp;무시하고&nbsp;남성-여성의&nbsp;권력 관계가 역전되는 경우&nbsp; '사회적 시선이라고 포장된 다분히 남성 위주의 시선'들이 이와 같은 용어를 만들어낸다는 점은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nbsp;특히 **녀처럼 근래에 들어 이와 같은 현상들이 자주 출몰하는 데&nbsp;'불법'이 분명한 남성들의 밤문화,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보다 이와 같은 여성 주도형 사회 현상에 대한 '윤리적'비판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상은 기형적!!!!!!!! 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nbsp;<br>&nbsp;&nbsp;또 어장 관리가 여성들에게 특화(?)된 현상이라고 해도&nbsp;여성의 경우, 좋아하는 이성에게 냅다 고백하는, 고백의 주체 역할보다 고백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압도적이고, 그와 같은 사회적 학습 장치&nbsp;때문에 고백을 유도하는&nbsp;기술이&nbsp;기형적으로!!!!!!! 발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고 싶다.&nbsp;어장관리의 기술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연애의 정치학(하하하)을&nbsp;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br><br>* 그런데, 이 모든 사회적 인과관계를 전제한다고 해도 소위 cool&nbsp;하기 그지없는&nbsp;어장 관리자들의 논리(타인의 일방적 감정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책임 윤리의 측면에서 다시 한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어장 관리자가 되는 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 권력 우위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so cool 한 어장 관리자는 사실 그와 같은 권력 우위의 문제를 애정의 문제로 보기를 요구하지만 그와 같은 이성간의 긴장을 즐길 수 있는 건 권력 우위에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그런 점에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겠다. <br>&nbsp;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어장 관리라고 할지라도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 의도, 의지, 고의가 없다면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 역시 '방기'라는 행위가 '책임 윤리'의 측면에서 비윤리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nbsp;도무지 cool 한 것만을 미덕으로 삼는 이 사회적 분위기가 나는 싫다는 거다. 참고로 나는야 고백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다. 맨날 어깨가 빠져라 컨트롤도 안되는&nbsp;스트레이트로 고백만 하고 살았다.&nbsp;그 점은 좀 억울하다. 억울해!!			 ]]> 
		</description>
		<category>문자 중독</category>
		<pubDate>Tue, 15 Jul 2008 14:58:35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일흔번씩 일곱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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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나는 왜 그럴까, 일흔 번씩 일곱번 생각한다. 생각하면서 운동한다. 나는야 원래 반성을 해도 해도 결국 반성이 안되는 인종이므로, 걍 반성하면서 운동이나 하자는 것이다. 내 반성은 나의 정신에는 도움이 안되고, 내 육체에만 도움이 무척 된다. 혹시 내가 반성이 안되는 건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술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걸까, 머 그런 생각이 자동, 든다. <br><br>* 2주 전에 간만에 농구를 했는데 2쿼터 뛰니까 이건 머 완전 탈진이다. 그날 경기는 24초 공격 시간 제한이 있었는데, 그랬더니 더 힘들었다. 왔다갔다를 더 자주해야 하니까 그렇다. 에...나는 심리적으로, 아니 더 정확히는 행동심리학(? 그런 게 있나.ㅎㅎ)적으로 자기 규제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는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는 까칠, 히스테리에, 정리벽(믿기지 않겠지만)에 신경증 비스무레한 증상을 갖춘 섬세한 남자였다, 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에 아주 약하기 때문에, 나는 자기 규제를 아예 없애버렸다. 흠...잘못된 대처 방법이었을까나.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되자, 고 결심해서 그렇게 된 걸 보면 아주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description>
		<category>life goes on</category>
		<pubDate>Sun, 13 Jul 2008 16:32:04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미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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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춘수의 시집에는, 정확하게는 세스토프의 글을 인용해서 천사는 온 몸이 눈으로 되어 있다고 써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이미지가 아니다. 눈으로 가득 들어찬 천사는 어떤 의미에서 언어화는 될지언정 이미지가 될 수는 없다. 언어로 옮아가기 위해&nbsp;천사가 존재할 리는 없다.&nbsp;저 진술을 통해 불러낸 존재는&nbsp;어떤 호명, 어떤 언어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조우, 아니 싱크로율이 100%에 달하는 상태, 그것이다.&nbsp;그런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를 예비하거나, 의미를 충족시키기 위해&nbsp;존재하는&nbsp;존재 따윈 없다.&nbsp;그래서 그는 천사를 불러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천사라는 존재는 완전하거나 완전히 선한 무엇이 아니라, 의미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어떤 것이다. <br>&nbsp; 이미지는 그래서 언어도단이다.&nbsp;존재에게는 수많은 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 뿐인 입이 있다. 항문이 있다. 춘수의 시에서 눈은 입과 분리돼 있다. 그게 천사가 가능한 조건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추구한 이미지들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지 않아도 가능했던 거다. 저 수많은 눈을 통해 전달되는 체험과 감각의 홍수는 우리들 입의 게걸스러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nbsp;그것은 감각의 문제를 넘어 욕망의 작동원리를 나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미지가 거기서 태어난다고&nbsp;나는 믿는다.&nbsp;이제, 겨우, 그렇다.&nbsp;&nbsp;			 ]]> 
		</description>
		<category>문자 중독</category>
		<pubDate>Sat, 12 Jul 2008 14:59:39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안'섹시한 시위대가 어딨니? ]]> </title>
		<link>http://notcool.egloos.com/447652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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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하나도 관능적이지 않은 시위대가 있다는 건 아주 실망스러운 일이다. 직장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로 뛰쳐나왔는데도, 하나도 '안'관능적이야, '안'섹시해. 그럼 도대체 어디 가서 섹시할래? 언제 관능적일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나는야 닥치는대로 살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인지라, 닥치는대로 사는데, 세븐틴이었을 때 한번 그리고 스물네 살 때 한번 '결심' 비슷한 걸 한적이 있다. 세븐틴이었을 때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새벽 여섯시에 잠들었으면 잠들었지, 다시는 그 시간에 일어나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스물네 살 때는 이 억센 팔다리를 국가나 집단이&nbsp;아닌, 오로지 스스로와 여성에게만 제공하리라는 다짐.<br>&nbsp; 도대체 하나도 안관능적인 시위대 같은 건 내 상상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해가 안간다는 거다. 수십만이 모였는데, 조선일보 창문 하나 깨지지 않는다는 게 가능하다는 게. 방법적으로만 존재하는&nbsp;시위대인가? 방법적으로 누구를 사랑하거나, 증오할 수 있나? 그 팔다리는 숟가락 드는데만 쓰이는 건가? 하나도 안섹시하다. 하나도 안관능적이야.<br><br>&nbsp;이 시민적이고, 체제내적이며, 비폭력적인 '주술'과 '미신'을 깨부수는 데 필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관능'이라고 답하겠다. 			 ]]> 
		</description>
		<category>life goes on</category>
		<pubDate>Wed, 09 Jul 2008 01:53:42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너희들과는 안녕 ]]> </title>
		<link>http://notcool.egloos.com/447541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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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머냐, 내가 촛불집회에 맨날맨날 출근한 것도 아니고 결국 딱 세번 나갔다 술 먹다 왔지만, 원더걸스, 김연아, 엄정화, 이효리, 아오이 유우( - -;;는 아닌가?) 그 모든 결석한 것들과는 결별하련다. 바이바이.....			 ]]> 
		</description>
		<category>life goes on</category>
		<pubDate>Tue, 08 Jul 2008 12:53:35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광장의 미디어 ]]> </title>
		<link>http://notcool.egloos.com/447536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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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7월 1일 오전에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이것저것 힘든 한 주였다. 사고로 돌아가셔서 괜스레 여기저기 알아보고, 찾아가 술 마시고 결국 발인을 한참 늦춘 후에야 문제가 해결되서 내일이 발인이다. 그 친구도 나와는 비슷해서 아마 발인 당일이나 되어야 제 슬픔을 돌볼 겨를이 있으리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좀 이상하지만, 내 아내를 포함해서 나와 절친한 친구들은 이제 다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고보면 친구들의 부친상이 유독 많았던 것 같기도....<br><br>* 7월 5일 내가 찾아간 광장은 너무 시끄럽더라. 주최측이 설치한 무대 위에서 나오는 어떤 노래들은 간만이라 반가운 것도 있었지만, 아주 시끄러웠다. 나는 거리를 지날 때 가게 바깥으로 거리를 향해 틀어놓은 스피커들을 정말 증오하는데 비슷한 심정이었다. 광장의 정치가 수평적이라는 뜻은 누군가 단을 세우지 않고, 또 그 단을 세움으로써 해석을 독점하지 않으며, 일방적인 해석을 유통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게 단이 되었건, 무대가 되었건, 또 해석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없었건 간에 그 자리에 무대가 세워진 것 자체가 아주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거리의 정치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유통시키건 결국 미디어였다. 광장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 두 개의 의견으로 수렴되는 일은 없었지만 미디어에 대한 호오만큼은 아주 분명했다.&nbsp;<br>&nbsp;&nbsp;밥 먹으면서 신문을, 티브이를 보는 그 일상의 끔찍함과 자각증상이 없는&nbsp;병증, 그 일상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폐쇄성을 뜯어고치려면 일단 미디어가, 저널이 그 당파성을 드러내야 하며, 광장은&nbsp;미디어의, 저널리즘의 그 당파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해부학 강의가 펼쳐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일단은 그렇다.&nbsp;&nbsp;&nbsp;			 ]]> 
		</description>
		<category>life goes on</category>
		<pubDate>Tue, 08 Jul 2008 12:26:55 GMT</pubDate>
		<dc:creator>뮤탄트</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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