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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탄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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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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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 연작 칼럼이라고 하면 되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다이다이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눈에는 눈 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사형제도를 굳이 반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오히려 정말 복수심이 극에 달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아주 극악한 범죄라면 그것에 대한 복수가 한 인간의 인격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절망적이지만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 그런 극단적인 복수의 마음을 먹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해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설사 그것이 자기 가족을 해한 사람이라고 해도 막상 자신의 손으로 그 복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형제도가 복수로써 정당성을 갖는다면, 그것이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실존적 결단의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며, 그렇지만 그것이 실존적 자기 결정권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충실한 존재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면 행정적, 법률적 절차로써 사형제도란 인간의 복수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형제도를 복수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건 한마디로 그게 남의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전쟁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개인적 살인보다 훨씬 더 '가능한' 이유는 그 전쟁의 명분이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전쟁은 그 자기 소외의 가장 극단적인 증거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런 맥락에서 사형제도 역시 이 극단적인 자기 소외의 근대 행정의 산물에 훨씬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쉬운 말로 복수라는 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