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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탄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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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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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에서 존 치버의 장편 '팰코너'를 읽고 있다. 간결하고 재치있고 아이러니컬한 그의 단편과 달리 이 장편은 밑바닥까지 우울하고 어둡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깔끔한 단편들이 만들어낸 길다란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귀로는 여러가지 음악을 고른 끝에 로이 부케넌을 bgm으로 깔고 들었더니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뭐냐, 그러니까 아이러니란 길다란 비극적 서사를 날카롭게 도려낸 짧은 단면 같은 것이다. ─혁명(가속한 진화라 할 수 있는)은 진화가 보다 서서히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조화에 속한다. <크로포트킨>
크로포트킨1)은 가장 추운 땅으로 떠났다, 스테프 초원의 乾期와 암염 채굴장의 괴혈병이 사람을 죽음의 별빛에 닿게도 하고 울부짖는 자유에 이르게도 한다 빙하의 흔적은 이제 자작나무로 덮여 들판2)은 더욱 희고 광활해졌다 사람들은 낡은 囚衣를 걸치고 빈 세상을 지나갔다 누군가 길과 땅 위에 죽음의 집의 기록3)을 남겼다 그는 유라시아의, 인간의 지도4)를 꼼꼼히 그렸다 생나무를 삼키는 불꽃은, 나무 뿌리까지 스며든 수백 년의 비애와 탄식을 닮아 이글거렸다 고요하고 푸른 불빛에 물드는 사람들 눈 덮인 툰드라…침엽수림의 병든 나무들이 끝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의 꿈5)에서는 유라시아 산맥이 달려와 꿈틀거리며 침강하거나 융기하였다, 일생 동안 산의 굉음이 울려왔다 동판화에 새기는 그의 겨울 속에서도 산은 풍화하며 깎이어갔다 세계를 변화6)시키고픈 세상을 뜨거운 불7)위에 옮기고픈 자의 풍경과, 절망 대신에 다가올 빛나는 날짜를 그리워하며 크로포트킨은 가장 추운 땅8)으로 떠났다
1) 피터 크로포트킨(1842~1921) :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 레닌그라드의 근위학교 졸업 후 시베리아의 코작 기병대 사관으로 부임. 1867 년에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바쿠닌파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아나키즘을 이해하게 된다. 쥬라 지방의 노동자들과의 생활 끝에 아나키스트로 변모하면서 귀국하여 차이코프스키단에 가입하여 2 년간 <민중 속으로>라는 표어 아래 나로드니키 운동의 선전에 헌신했다. 1874 년 봄에 체포되어 복역중 탈출하여 영국으로 망명, 이후 40 년간의 망명시대를 거쳐 1917 년 러시아 2 월 혁명 후에 귀국, 볼세비키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것은 혁명의 장송>이라 예견하고 레닌을 여러 차례 규탄한다. 2) 크로포트킨이 세속적 출세가 보장된 러시아 근위학교 졸업 후 시베리아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레닌그라드의 나쁜 분위기에서 벗어날 것, 과학 연구를 계속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농노 해방 다음에 올 것으로 그가 생각했던 위대한 개혁에서 그 스스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다.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그는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처녀지인 시베리아를 선택했다. 3) 시베리아에서 그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형벌 제도의 조사였다. 그는 스테프 초원을 도보로 넘어가는 철쇄에 묶인 죄수들의 행렬과 죄수들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에서 일하고 가장 소름끼치는 암염 채굴장에서는 폴란드의 반란자들이 결핵과 괴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죽음의 집의 기록』에서의 묘사와 그대로 보았다. 4)『혁명가의 회상』에서 크로포트킨은「그때까지 마음속에 품어왔던 국가 규율에 대한 일체의 신념을 시베리아에서 잃어버렸다」고 적었다. 개혁성에 대한 실망이 커짐에 따라 그는 과학에 의지한다. 동시베리아의 만주 변경 지역을 탐험하는 임무에서 그는 코작병이나 사냥꾼들의 단순하고 부패하지 않은 생활을 발견했다. 그 생활의 매력은 그의 후기 저작에 나타나는 원시적인 것에 대한 예찬에 확실히 영향을 주고 있다. 그 탐험의 결과로 그는 유라시아 산악론에 관한 지리학자의 생각을 일변시킨 <동아시아 산맥 및 고원의 구조에 관한 이론> <빙하기에 대한 지식과 스테프 초원 사람들의 서쪽으로의 이동 및 그 연쇄 반응에 의하여 蠻族이 유럽과 고대 동방 왕국으로 칩입하는 원인이 된 동아시아의 대건조에 대한 이론> 등을 얻는다. 그리고 그 탐험 이후 그는 시베리아와 스테프 초원의 하천과 산악의 지도를 그렸다. 5)『상호부조론』은 1890 년 9 월에서 1896 년 6 월에 걸쳐『19 세기』지에 연재되고, 1902 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그는 생물의 진화 및 인간 사회의 발달이 생존 경쟁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다윈주의자의 주장에 반대하고, 예를 들면 우리가 역경에 처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도와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감정과 같이 거의 본능적으로 외부적 권력의 강제 없이 자발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사실을 동물학자인 케슬러의 견해에 기초를 두어 생물의 집단으로부터 인간 사회에 걸쳐서 인정하고 이 상호 부조가 생물 진화와 사회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또 이것이 도덕 관념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6) 크로포트킨은 아나르고 코뮌주의자다. 그에게 있어 코뮌은 지방 정치의 기관이 아니다. 또한 정치적 연합주의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직접 관계하는 개인의 집단에 의하여 대표된 모든 사회적 이해를 결합하는 자발적인 결합이다. 다른 코뮌과의 결합에 의해서 그것은 국가에 대치될 협동 조합의 망상 조직을 만들어낸다. 한 지역내의 공동 생활을 위한 코뮌들 및 기능별로 결합한 직종별 노동 조합들과 이들의 광범위한 연합이란 이념을 해방된 미래 사회의 기본 조직으로 그는 구상했다. 이 사상이 다른 아나키즘과 구별되는 것은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배> 문제이다. 7)「나의 주위에 빈궁과 곰팡이 핀 한 조각 빵을 위한 싸움밖에 없는 때 어떻게 나에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겠는가. 내가 고상한 정서의 세계 속에 생활하기 위하여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될 모든 것은 제 손으로 보리밭을 경작하면서도 제 자식들에게 배불리 빵을 먹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것을 빼앗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지리학자로서의 크로포트킨이 혁명가로 변모하는 과정의 이유를『혁명가의 회상』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8) 크로포트킨은 러시아 혁명에서 잘못된 정책을 질책했다. 그는 사회주의가 결국 세계적 규모로 실현되리라는 것을 예상하면서, 자본가의 예속에서 생산을 해방할 것을 목표로 하는 자유롭게 조직된 노동 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보다 강렬한 인터내셔널의 설립을 호소했으니, 그것은 1922 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생디칼리스트 인터내셔널>로서 구체화되었고, 또한 1936~1939 년에 <노동총연맹>과 <이베리아 아나키스트연맹>이 주도한 스페인 혁명으로 현실화되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5 마일의 인파가 뒤를 따랐다. 그 아나키스트 그룹의 검은 깃발에는 붉은색으로 <권력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가 새겨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