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랭크 커머드에 따르면(프랭크 커머드도 코울리지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낭만주의 시대 이전에 상상력이라는 말 안에는 '반역'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낭만주의의 도래는 상상력이라는 말에서 정치적 함의를 도려내는 계기과 됨과 동시에 반역, 저항이라는 말을 상상력이라는 모호한 말로부터 독립시켰다. 낭만주의가 상징성과 신비주의로 움직여간 흔적과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다는 것은 과잉 해석이겠지만 의미 있는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 프랑스에서 낭만주의 문학은 왕정복고와 같은 정치적 반동 의 전유물이 되기도 했던 반면, 정치적으로 혁명을 지지했던 이들의 문학은 상대적으로 고답적이고, 보다 고전적이었다. 프랑스에서 상징주의의 등장은 낭만주의를 이어받았다는 측면도 있지만 고답파들의 문학과 단절하는 과정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정치적 반동이라고 해서 문학적 함량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루시엥 골드만이 지적한 바 '법복 귀족'으로써 파스칼 같은 이들이 가진 반동성은 어쩌면 팡세와 같은 밀도 있는 에쎄가 태어나는 데 중요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파스칼의 팡세는 일종의 내적 망명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 영국, 프랑스에 비해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의 탄생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독일은 낭만주의 문학의 발생 시기가 국민국가의 태동기와 거의 일치했다. 물론, 국민국가의 탄생이라는 역사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주의, 그것과는 변별되어야 할 것이다. 당시 국민국가는 봉건제를 대체할 일종의 혁명이었으며, 그 정신적 동인으로써 낭만주의는 당대의 조류에 적합한 사상적 흐름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위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말에 가장 들어맞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 상상력이 가지는 구체성과 유연함은 정치적 함의, 그것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더 나아가자면 정치적 함의를 잃어버린 상상력은 구체적이지도 유연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상상력이 정치적 맥락 안에 가둬지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태도다. 낭만주의 문학을 살펴보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것이다.
*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의 글 가운데 '죽음에 맞서는 교양'이라는 표현이 있다. 히틀러 살해기도 혐의로 옥에 갖혀 있을 때, 그가 써내려간 이 문장 안에서 교양은 인간이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 그것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사소하지만 비인간적인 혹은 극단적인 폭력 앞에서 인간적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적 존엄의 결과물에 대한 증거와 보고서들, 그런 것들이 교양이다. 에, 그런 점에서 서준식의 옥중서한 같은 것을 읽어보면 정말 교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근데 후딱 절판됐다. 교양없는 대한민국.
* 파시즘이 뭐냐면, 정말 교양없는 집단 행동이 아닐까, 하는 다분히 심정적인 정의지만, 네이버에 달리는 리플들과, 미국을 위해 부흥기도회를 여는 기독교도들과, 우국충정으로 모이는 예비역 군인들과, 우우우 무시무시하게 단체로 교양없고 매너없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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