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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탄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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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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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어둡고 괴로운 일들 뿐이다. 어떻게 사람들은 FTA니, 간첩이니, 팔레스타인이니 하는 잔혹극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치솟은 집값, 땅값과 사기꾼들과 잡놈들과......어떻게 해서 사람들은 그런 치욕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만원 지하철과 야근과 대책없는 아이들의 미래와 천박한 자본주의의 얼굴과 표정들......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지도 괴롭지도 않다. 티브이의 볼륨을 높이고 게임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성실하게 교회에 다니며 꼬박꼬박 직장에 나가면서................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 만큼 개소리가 없다. 평범한 것, 상식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은 얼마나 많은 야만의 얼굴과 이빨을 감추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십대들은 지극히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공부를 하고 한 아름도 안되는 책상 위에서 자신의 생을 평가받고 또 분류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이십대들은 지극히 이상하게도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스무살을 바친다. 직장인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삶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잔혹성과 폭력성, 야만성, 천박함을 생각하면 생각하는 내가 아득하게 어두워지고 괴롭다. 그냥 가축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재판이 가지는 여전히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시오니즘적인 편향성을 정치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인류에 대한 범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또 하나의 정치적 연극 그리고 아이히만이 유대인 해외 이주 사업을 통해 수십만의 유대인을 구한 것과 이후 '최종해결책'이 도래해 수백만을 도살하는 데 일조한 것이 실은 아이히만에게는 원칙적으로 똑같은 기준 아래 이루어진 거의 동등한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범한 한 직장인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는 것과 직장에서 불합리한 상하관계와 봉건적인 노동 악습을 답습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아무런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이히만이 지극히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윤리와 원칙을 기준으로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범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도 될 성 싶으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자화'의 다른 말이다. FTA도, 팔레스타인도, 그져 그것은 남의 일이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것은 모조리 그 타자들의 퍼레이드이며 타자들의 퍼레이드가 잔혹하든, 평화롭든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매스, 미디어는 실은 먼 곳의 소식이나 모르는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곳의 일도 가까운 곳의 일도 그져 '화면'과 '뉴스'로 만드는 타자화의 컨베어벨트 같은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가 저지르는 타자화는 타인을 향할 뿐 아니라 바로 스스로를 타자화하기도 한다. 만원 지하철에서 정당하게 분노하고 항의 하지 않음으로써, FTA를 불구경하듯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너절하고 비루하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평범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스스로한테서 타자화한다. 스스로를 타자화함으로써 우리는 이 너절함을, 치욕을, 비루함을 견뎌내고 마침내는 망각한다. 마비된다. 아이히만이 유대인을 무슨 '악'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거기 무슨 거대한 이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져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그것을 수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며, 다만 그는 그것을 좀 더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열심'을 다 했을 뿐이다. 평범이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화된 악을 감추고 있다. 가끔 밤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가 가진 분노가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대상을 증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무력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 분노나 증오는 대상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를 갉아 먹는다. 이 분노가 합당하고 납득할 만한 것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나는 공부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분노를 마침내 벗어나고 싶어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