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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포스팅한 이 좋은 싸고 질좋고 아름다운 물건을 못알아보는, 미학적 백치. ㅎㅎㅎㅎㅎ
미학적 양심 없이 지지될 수 있는 정치적 입장은 없다규!!!!! 나를 울려 주는 랑시에르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글을 쓰느냐가 내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 책상 앞에 갈 때까지 그 지난한 과정이 나의 실체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저를 사로잡은 것은 대략 8, 9년 쯤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돌아와 넥타이를 풀고, 책상 앞에 앉으면 저는 책상 앞에 앉기까지 현실을 뚫고 지나온 나와, 책상 앞에 앉는 나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간격 때문에 문장들이 내려앉지 못하고 순식간에 휘발되어버리는 장면들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지켜봐야했습니다. 책상 앞에 앉기 위해 저는 회사라는 기괴한 장소의 기괴한 윤리들을 참아내야 하고, 지하철에 들어찬 온갖 냄새를 참아내야 하고, 설겆이에, 청소에, 세금을 물어야 하고, 취직 안한 동생의 티브이 시청을 저지해야 하며 식구들에게 변명을 해야 합니다. 글쓰기는 도피처가 아니고, 놀이도 아니지만, 욕망과 환상과 그것에 대한 저항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만약 글쓰기가 그 욕망과 환상과, 저항의 중력으로부터 아무 상관 없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진공 상태는 아무런 소리를 만들어내지 않을 겁니다. 책상 앞에 앉는 나, 글쓰는 나는 문장과 나 사이에 합의되지 못하고 갈등하는 나, 혹은 문장에 경도된 환상의 자아이면서 동시에 엄연한 현실로부터 부서져 나간 환상을 목격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둘 사이의 타협점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장소로 존해하는 것이며, 오직 그럴 때에만 글쓰기가 유의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즉, 책상은 마침내 고요해지는 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갈등과 난투극이 벌어지는 전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완전고용에 대한 환상이 우파 경제학의 시작이라면, 내가 가진 생각, 마음의 완전한 표현이 곧 예술의 원형이라는 것은 부르조아 미학의 환상이며, 전제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보면 정신이 곧 물질이 되는 그것, 고귀한 상상력이 곧 예술이 되는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 되어버리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예술은 표현할 도리가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한 불가능한 시도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마침내 예술이 완전한 표현에 이르면 예술은 완성되는 것인가요...... 저는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책상을 향해 걸어온 작가의 삶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상 앞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정지해서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것과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문장들도 중력과 소음에 시달리고, 난투극에 멍드는 것이 마땅합니다. 문장들을 우주로 쏘아올려 지구 궤도를 돌게 만들 목적이 아니니까........ * 다 늙은 로버트 레드포드랑, 제니퍼 로페즈랑, 여자 아이, 동물들, 곰이 나오는 영화. 시시껄렁하고, 그냥 그런 영화인데, 두 번이나 봤다. 그냥 시골인데, 카우보이도 없고...말타고 터덜터덜 가는 장면이 나는 참 좋다. 비단 이 영화 뿐 아니라, 말타고 터벅터벅 가는 장면들은 모조리 다 좋다. 한가해 보이고, 느릿느릿하고, 졸린 장면들이라서 그런가. 나는 졸고 있는 상태가 좋다. 졸린 상태가 좋다. 땀 흘리면서 운동을 하고, 다음날 회사에서 볕도 좋은 창문 옆에서 키보드에 손을 얹고 꾸벅꾸벅 졸 때가 나는 제일 행복해. 극도로 기쁘거나, 극도로 슬픈 것도 말고. 이것저것 다 지나간 뒤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 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없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참, 졸린 남자, 잠이 오게 하는 남자로 기억되었으면 싶네.
20대 다큐 <개청춘>이 <당신과 나의 전쟁>과 만났다! [ 불안정 노동의 시대, 88세대와 쌍용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 당신과 나의 전쟁 & 개청춘 조인트 상영회. 불안정노동 문제와 세대 담론, 얼핏 들으면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한다면 비정규직 확산을 포함한 불안정노동 문제는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문제다. 한편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도 노동시장에 신규 편입되었거나 이를 준비하는 청년세대의 관심은 절실하다. 지금까지 청년세대와 노동운동 사이에는 ‘알바’와 ‘공장노동자’라는 말 사이에 느껴지는 간극만큼의 정서적 간극이 있었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청년들은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노동운동은 어떻게 해야 청년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우리는 불안정노동 문제와 세대 문제를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후 결코 쉽지 않은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기해 보기로 한다. 1. 일시 : 3월 13일(토요일) 2. 장소 : 성균관대 인문관 308호 3. 프로그램 [1부 (15:00~16:30)]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 상영 [2부 (16:40~18:05)] 다큐멘터리 “개청춘” 상영 [3부 (18:15~19:45)] 집담회 : 불안정노동의 시대, 88만원 세대와 쌍용 노동자는 어디에서 만나는가? 4. 패널 소개 사회자 : 한윤형(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패널1 : 태준식 (당신과 나의 전쟁 연출) 패널2 : 반이다 (“개청춘 감독” 공동 연출) 패널3 : 이창근 (쌍용자동차지부 전 기획부장) 패널4 : 이류한승 (서부비정규센터) 패널5 : 최태섭 (투명좌파) 패널6 : 의미 (성균관대 문과대학학생회장) 주최 : “당신과 나의 전쟁” 제작위원회 공동주최 : 성균관대 학생행진 주관 : 미행美行 후원 : 성균관대 사회대학생회, 인문대학생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