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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탄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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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머 번번히 뽑아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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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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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시에 소주로 시작 1병쯤먹은 듯 -> 자리를 옮겨 맥주 한 잔 -> 해산 -> 아쉬워서 포장마차.......소주 1병 -> 재결합 소주 2병쯤 -> 자아 망실 달리기 시작 폭탄주와 알잔으로 들이부음 -> 노래방 맥주 1캔 -> 종료 -> 아침 여섯시 일출 -> 좀비 출근
김모군이랑 먹으면 말리는 놈이 아무도 없어서 늘 이 따위가 된다.............. 20대 어쩌구 포스팅 지웠어요. 트랙백 걸었더니 사람도 넘 많이 오고....초록불님 댓글처럼 분명 오바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계급 구조와 다양한 갈등이 더 이상 아무런 발언권을 획득할 수 없을 때, 다른 말로 하면 현실 정치와 현실 정치 스펙트럼이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을 때, 그 대표되지 못한 갈등과 에너지가 향하는 한 가지 선택이 파시즘이다. 직접성이 곧 현실성으로, 정치로, 둔갑하는 자리가 곧 파시즘이다, 그리고 혁명이다. 파시즘이 존재하는 자리는 곧 혁명의 가능성이 숨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치 스펙트럼이 대표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자리는 완전한 대표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희망과 욕망이 일어나는 자리이기도 하고, 또 한편 대표성으로 유지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치공학이 완전히 폐기되 버리는 자리이다.
아니, 폐기된다고 하는 말은 틀렸다. 파시즘은 정상적인 정치공학이 뒤집히는 자리다. 정치스펙트럼이 현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현실을 규정하는 자리다. 아니, 그 말도 틀렸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는 더 이상 조정도 개선의 여지도 없는 탈정치이므로 탈정치의 정치라고 해야 옳다. 현실이 대표성을 상실한 정치를 거부한 자리에는 직접성의 정치인 '혁명'과 '탈정치의 정치'가 자리잡는다. 파시즘을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사로잡기가 어려운 이유는 정치 현상이 정치적 대표성을 압도해버리는 그 특성 때문이다. 프레시안에 기고된 한 학생의 독자기고(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14025201)는 더 이상 '잘못' 대표되기를 거부하는 올바른 현실의 목소리가 담겨 있으며, 동시에 이 땅의 어떤 정치 세력이 이들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인가, 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대표됨으로써 발생해버린 mb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정치공학을 나는 이 아이들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저 기사에서 무대로 상징되는 '대표성'에 신물이 나버린 아이들의 편이다. 나는 이 아이들이 섣불리 어떤 대표성으로 묶이기보다 어떤 '잘못된' 대표성으로 묶이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지식인이란 무엇일까, 다만 최악을 막되 구체적인 현실을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 대체하고 살핌으로써 판단을 최후까지 밀어내고 판단을 아끼는 이들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계속...... * 걷잡을 수 없는 양극화는 자본주의가 국가를 점령하고,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체제 내에서 이뤄지는 시민들의 욕망과 꿈은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성찰하기보다 국가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를 원하게 된다. 좌파적 대안들이 자리잡지 못하면, 결국 국가라는 대안을 욕망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가 폭주할수록,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국가를 욕망하는 매커니즘이 강화된다.
* 한 시대에 시인은 몇 명이면 족할까. 혹은 소설가는? 흔히들 당대의 천재가 시대를 압도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문학에 대한 환타지. 사실 어찌보면 그 천재에 대한 환타지는 바로 우리 문학의 승자독식 구조를 '알흠답게'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마디로 나는 문학이 흘러넘칠 정도로 다양해야 한다고 믿는다. 문학은 지옥처럼 들끓어야 옳다, 고 나는 믿는다.
* 지금 나는 청바지가 스무벌이 훌쩍 넘고, 베란다도 있다. 청소기에 의자도 네 개나 있다. 사진첩에 정수기까지 있다. 신문이 들어오고 우유도 배달된다. 컴퓨터가 두 대나 있다.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스물두살인가, 세살인가 이년 남짓 동안 바지가 딱 하나 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옷에 별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틈만 나면 골방에 들어앉아 있느라 별로 옷도 필요없었던 시절이었나부다. 딱 바지 하나로 나는 연애도 하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농구도 하고, 싸움도 하고 술도 먹고 그랬다. 나중에는 정말 청바지가 닳고 닳아서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찢어지고 헤져서 싹뚝 잘라내 반바지로 입고 마침내는 그마져도 불가능해져서 동산에 올라가 흙을 파고 거기 바지를 묻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삶의 어떤 한 단락이었지, 싶다. * 아이들이 거리에서 외친다. 거기 주석을 달거나, 그것을 수식할 만한 말을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그져 팩스턴의 파시즘, 아렌트의 아이히만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파시즘을 들여다보는 건 언제나 나를 가장 첨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책상 앞에서, 혹은 출퇴근지하철에서 아이들에게 동참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당장 이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새치가 나는가 싶더니, 어제 수염 가운데 흰 놈이 새싹처럼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머랄까, 아내한테는 늙었나보다, 하소연했지만 난생 처음 흰 수염이 나니까 이게 또 어떤 점에서 새롭고 신기하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여러가지이듯이, 자신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여러가지인 모양이다.
* 설겆이가 쌓여 있어서 일단 설겆이를 하고 나면 외출을 할거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농구장에 갈 것이고, 농구가 끝나면 바나나를 까먹고 일흔번씩 일곱번 팔굽혀펴기를 할 예정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요즘 나의 팔굽혀펴기 횟수가 자꾸만 올라가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나는 밤이 무서운 것이다. 아서 밀러와 아렌트를 다시 꺼내 읽는 중이다. 악을 전파하는 건, 악한 사람이 아니다. 진부한 사람, 앵무새처럼 떠벌이는 자들이 악을 실어나른다. 진부함이란 도구적 합리성, 맹목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MB 정권에 대해서 느끼는 공포감은 그 끝간데를 모르는 진부함에서 비롯된 것이 맞다. 예루살럼 법정에 선 아이히만이, 뉘른베르크가 또 그것을 전하고 있다. 아렌트가 아도르노가 그것을 지적해 주고 있다.
예술은 무엇보다 진부함을 증오해야 한다. 예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려면 정치적 입장의 올바름을 표현하기보다 진부함을 경계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 안그러면 말짱 헛거다. 11일날 잠실에서 열린 토요일 LG-롯데전에 아내를 데려갔다. 타이밍도 적절하게 야구장이라고는 난생 처음 가본 아내는 부산 사람. 1루 LG측 내야까지 밀고 들어온 부산 팬들 덕분에, 그리고 요즘 신나는 롯데 덕분에 아내는 그날 이후 롯데를 자신의 첫번째 팀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은 모양이다. 그날 경기는 연장 10회에 터진 LG 최동수의 굿바이 투런 홈런으로 마무리됐지만, 아무튼 아내의 눈에는 너무너무 야구가 즐거웠던 모양이다. 07시즌이 끝났을 때, 베어스의 최종 성적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이었다. 물론 아쉬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상 외의 좋은 성적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초만 해도 바닥을 길 때마다 김경문 감독의 왈 리빌딩 중이라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두산은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최소한 5년~10년을 내다보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발굴에 투자를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문제는 리빌딩중인 두산이 지난 시즌 준우승을 거두었다는 것.
08시즌 시작과 함께 안경현과 김동주, 홍성흔 등 두산의 주전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트레이드, 이적, 연봉 등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두산팬의 입장에서 보면 그 멤버가지고, 05, 06, 07시즌 좋은 성적을 거둔 두산, 특히 노장 선수들에게는 일정한 보상이 필요했고, 그러나 리빌딩 중인 구단과 프런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07시즌 종료와 함께 시작된 두산 베어스의 안, 홍, 김과 관련된 잡음들을 나는 솔직히 두산 프런트와, 구단의 언론플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멤버로 최근 3년간 그 정도 성적에 준우승까지 이루었다면 아무 보상없이 넘어가기란 아주 힘든 일일텐데, 그 잡음들 덕분에 결과적으론 더 이상의 지출없이 그 선수들을 묶어놓게 될 수 있지 않았는가. 너무나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결과를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싶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11) -기형도- 옮겨다니고 옮겨다니느라 나는 정든 골목이나 거리를 내 것으로 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나마 각별한 골목이라고 하면 졸업 후에 동생과 같이 5년 정도 살았던 신림동 천변 동네 정도. 천변도로를 따라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가게와 미용실이, 쌀집이 있고 여름에는 동네 사람들이 가게 앞 평상에서 고기도 굽고, 소리 높여서 삿대질도 하고 그랬다. 농구장이 가까워서 매일 밤 농구하러 다니던 것도 그곳에서 잊지 못할 기억들이다. 그런 곳에는 아직도 '골목 생태계'가 존재해서 더운 여름날 맥주 한잔 걸치는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들고 나와 주고 받는 커플이 있고,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싸움이 있기도 하고, 걱정이나 한가로움이 있다. 승합차로 밤일을 다니는 젊은 여자들이 있고, 검문이 있고 카스테레오를 떼다 파는 어린 도둑들이 있다. 야근에 지친 순찰차가 쉬는 공터가 있다. 아파트나 빌딩들, 거대한 대형 마트와 스포츠센터가 몰아낸 골목의 생태계의 중요성은 '위대한 잠언으로 충전돼 있는' 자연 만큼이나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단언하건대, 골목과 거리의 생태계가 파괴된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그곳에 매몰돼 있는 사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인간성을 가지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철콘 근그리트', 브루스 데이빗슨의 일련의 작품들, 기형도나 이성복을 들여다 볼 때마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성복 시의 몰락의 가장 큰 징후가 그의 상상력이 거리와 골목에서 아파트로 기어들어가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면 나의 과장일까. |